2025년의 마지막 날, 국세청이 단행한 과장급 전보 인사는 표면적으로는 젊은 피의 수혈, 즉 세대교체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본청 과장급의 연령대가 50대에서 40대로 대폭 낮아졌다는 통계는 언뜻 보면 조직의 역동성을 위한 결단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숫자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실무와 현장을 지켜온 공채 및 세무대학 출신 베테랑들이 밀려나고, 그 자리를 상대적으로 현장 경험이 부족한 행정고시 출신들이 독점해가는 우려스러운 현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는 국세청이라는 조직의 근간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조세 실무까지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신호이기에 이것을 젊은 피 수혈이란 식의 포장은 어불성설입니다. 피해자는 결국 국민들이 될 것입니다.
젊은 국세청의 실체, 경험의 축출인가 권력의 독점인가
이번 인사의 핵심은 50대 과장들의 본청 이탈과 40대 과장들의 진입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떠나는 50대가 누구이며, 들어오는 40대가 누구인가 하는 점입니다. 본청을 떠나 일선 세무서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들 중 상당수는 세무대학 출신이거나 비고시 출신들입니다. 소득자료관리, 법무, 원천세 등 세정의 가장 밑단에서 실무를 챙겨온 베테랑들이 부이사관 승진이라는 영예 대신 일선 서장직이라는 위로성 보직을 받고 본청을 떠났습니다.
반면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80년대생 행정고시 출신들입니다. 물론 고시 출신들의 엘리트성과 정책 기획 능력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국세청은 기획재정부와 같은 순수 정책 부서가 아닙니다. 납세자의 재산권과 직접 맞닥뜨리는 현장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집행 기관입니다. 현장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세정의 디테일을 체득한 50대 실무형 리더들을 내보내고, 그 자리를 고시 합격 후 관리자 코스만 밟아온 젊은 관료들로 채우는 것이 과연 공정하고 합리적인 미래를 위한 선택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장과 괴리된 탁상행정의 필연적 귀결
실무 경험이 부재한 엘리트 중심의 조직 구성은 필연적으로 현장과 괴리된 정책을 양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책상 위에서 그려진 세정 지도는 현장의 복잡다단한 현실을 담아내지 못합니다. 납세자들이 겪는 실제적인 고충이나 일선 세무서 직원들이 감당해야 할 업무의 하중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이상적인 논리로만 무장한 지시들이 하달될 때 세정은 겉돌게 됩니다.
이번 인사에서 나타난 고시 출신들의 본청 장악은 이러한 우려를 가중시킵니다. 세무 현장의 바닥 정서를 모르는 이들이 내놓는 정책은 납세자에게는 현실성 없는 규제로, 일선 직원들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격무로 다가올 것입니다. 젊고 유능하다는 포장 아래 감춰진 현장 경험의 공백은 결국 국세청의 정책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기울어진 운동장, 구조적 차별의 고착화
국세청은 타 부처에 비해 사무관(5급) 비율이 기형적으로 적은 압정형 인력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9급 공채들에게는 수십 년을 근무해도 사무관 한 번 달기가 다른 부처보다 어려운 조직입니다. 반면 행정고시 출신들은 출발선부터 다릅니다. 이번 인사는 이러한 구조적 차별을 더욱 공고히 하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비고시 출신들이 아무리 현장에서 뼈를 깎는 노력을 해도, 결국 본청의 핵심 의사결정 라인인 과장급 이상에서는 고시 출신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물러나야 한다는 패배감을 심어준 것입니다.
조직 내 대다수를 차지하는 비고시 출신들의 사기 저하는 단순히 내부 불만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는 조직의 허리를 약하게 만들고, 구성원 간의 위화감을 조성하여 조직 전체의 동력을 떨어뜨립니다. 실력보다 입직 경로가 승진과 보직의 결정적 변수가 되는 조직에서 누가 헌신적으로 일하려 하겠습니까.
조선 후기의 교훈, 대다수가 무너지면 그 누구도 설 수 없다
역사를 되돌아봅시다. 조선 후기, 세도 정치 하에서 권력은 소수의 특정 가문에 집중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리그를 형성하여 권력을 독점했고, 백성들의 삶과 현장의 목소리는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대다수 백성의 삶이 무너지고 국가의 기강이 해이해지자, 결국 권력을 쥐고 있던 소수 기득권층을 포함한 사회 구성원 전체가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지금 국세청의 인사가 보여주는 방향성이 이와 다르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실무형 리더들을 배제하고, 특정 입직 경로 출신들이 요직을 독점하는 구조는 세도 정치와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대다수 구성원인 비고시 출신들이 희망을 잃고, 납세자와의 접점이 무너진 상황에서 소수의 엘리트 관료들만이 승승장구한다고 해서 국세청이 바로 설 수는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50대 과장들의 퇴진과 40대 고시 출신들의 본청 입성을 단순한 세대교체로 포장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이는 현장 경험의 경시이자, 특정 집단의 권력 독점을 가속화하는 위험한 신호입니다. 국세청이 진정으로 미래를 준비한다면, 젊음이라는 이미지 뒤에 숨어 실무를 쳐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현장의 땀방울을 아는 이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때, 비로소 살아있는 세정이 가능함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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