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세청은 올해 과세자료 처리 기간을 전년 대비 17% 단축하여 납세자의 가산세 부담을 425억 원이나 경감했다는 대대적인 성과를 발표했습니다. 납부지연가산세 부담률이 14.2% 감소하고 오래된 자료로 인한 소명 어려움을 해소했다는 점은 납세자 권익 향상 측면에서 분명 반길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수치상의 결실 뒤에 숨겨진 실무 공무원들의 처절한 희생과 시대착오적인 통제 시스템을 들여다보면 과연 이 성과가 지속 가능한 것인지 강한 의구심이 듭니다.
성과 지표에 매몰된 통제 행정과 바닥을 치는 조직 사기
국세청은 이번 성과가 미처리 과세자료에 대한 전수 원인 분석과 직원 성과평가 강화의 결과라고 자평합니다. 특히 가산세 부담이 큰 자료를 선별해 집중 처리하도록 성과평가체계를 강화하여 신고기한 3년 경과 자료를 45%나 줄였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는 현장의 실무자들을 성과 지표로 닦달하고 쥐어짜서 만들어낸 단기적인 성과에 불과합니다.
과거부터 국세청은 고시 출신 엘리트들에게는 권력의 핵심이자 인기 부서였으나, 정작 현장을 지키는 공채 출신 실무자들에게는 기피 직렬로 전락한 지 오래입니다. 수뇌부가 현장 직원의 안위나 업무 환경 개선에는 무관심한 채, 오로지 실적과 수치로 직원을 압박하고 불신하는 시스템에만 몰두해 온 결과입니다. 최근 세무직 공무원의 공채 인기가 바닥권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조직 문화와 과도한 업무 강도에 대한 실무자들의 냉소적 반응입니다.
장기적 권익 보호를 위한 전제 조건: 실무 공무원 처우 개선
국세청은 내년에도 과세자료 처리 기간을 지속적으로 단축하고 AI 기술을 도입하여 행정 혁신을 이루겠다고 공언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움직이는 조직에서 실무자의 사기가 바닥인 상태로 도입되는 그 어떤 첨단 기술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합리적인 국세 행정을 구현하고 싶다면, 그 시스템을 지탱하는 하위직 공무원들에 대한 정당한 대우와 존중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공무원을 단순한 행정 소모품으로 취급하며 성과 지표 달성을 위한 도구로만 활용하는 시대착오적인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직원을 믿지 못해 닦달하고 평가로 통제하는 구시대적 리더십은 장기적으로 행정 서비스의 질을 저하시키고 인재 이탈을 가속화할 뿐입니다.
수치 너머의 본질을 보는 개혁이 필요한 시점
과세자료TF를 구성하고 유형별 처리 지침을 마련하여 조기 처리를 유도하는 노력 자체는 평가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실무자들이 겪는 과중한 피로도와 조직에 대한 회의감은 무시되고 있습니다. 국세청은 눈에 보이는 가산세 경감액 425억 원이라는 숫자 뒤에 가려진 내부의 붕괴를 직시해야 합니다.
진정한 혁신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지시와 평가가 아니라, 하부 조직의 자발적 동기와 안정적인 근무 환경에서 시작됩니다. 고위직들만의 잔치인 성과 발표를 멈추고, 현장에서 땀 흘리는 실무 공무원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구조적 개혁에 착수해야 합니다. 직원이 행복하지 않은 조직이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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