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리드 행정사의 이야기

최근 대구 성서공단에서 일하던 25살 베트남 청년 뚜안(가명)의 사망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한국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청년이었습니다. K-팝과 한국 드라마를 좋아했고, 한국 화장품을 모으는 취미를 가진, 그야말로 “한국에서 미래를 꿈꾸던 유학생 출신 청년”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불법체류 단속 현장에서 3시간 넘게 숨죽여 숨어 있다가 결국 추락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체류 자격은 있었지만, D-10(구직 비자) 상태에서 제조업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단속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안타까운 사고임과 동시에, 우리 사회의 외국인 인권, 비자 정책, 근로허가 제도가 얼마나 현실과 괴리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상징입니다.

1. “적법한 단속이었다”라는 말이 주는 씁쓸함

사건 이후 법무부는 “절차상 적법한 단속이었다”, “사망 시점은 단속 종료 후였다”라는 취지의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되묻습니다.

“만약 단속 방식에 과도한 압박이 없었다면, 정말 이런 죽음이 발생했을까?”

단속 차량 여러 대가 들어오고, 명단을 들고 끝까지 사람을 찾는 상황 속에서 이주노동자, 유학생, 미등록 체류자들은 극도의 공포를 느낍니다. 서류상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떠나, 현장에서 이들에게 단속은 곧 추방, 미래의 파괴와 같은 공포로 다가옵니다.법률적으로 ‘적법’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인권과 안전의 관점에서 정당했는지,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여전히 “문제없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이 부분은 전혀 다른 차원의 질문입니다.

2. 한국에서 배우고, 일하고, 꿈꾸는 청년들… 그러나 과거에 머물러 있는 제도

뚜안의 삶은 오늘도 한국 곳곳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외국인 유학생, 청년, 이주노동자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한국어를 익히고 한국 회사 취업을 꿈꾸며 부모와 함께 이곳에서 새 삶을 꾸려보려 했던 사람

한국 정부는 “유학생 유치”, “외국인 인재 확보”, “K-브랜드 확산”을 이야기하며 정책을 홍보합니다. 하지만 정작 비자 제도와 근로허가 제도는 여전히 과거의 인력 수급 구조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문제가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유학생·졸업생들이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통로가 지나치게 좁다

비자 종류별로 허용되는 업종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

불법체류 단속은 강화되지만, 제도 개선은 더디다

고학력 외국인조차 “불법 취업 상태”로 밀려나는 구조가 반복된다

결국,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는 착실히 공부하고 생활하던 청년조차 “단속을 피해 숨어야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3. 이주노동자를 ‘숫자’로만 보는 단속은 또 다른 희생을 부른다

불법체류 단속 실적은 종종 “성과”처럼 관리됩니다.

단속 건수, 적발 인원, 강제퇴거 숫자 등은 정책 평가의 지표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숫자 뒤에는 한 사람의 삶, 가족, 꿈,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있습니다. 단속 과정에서 이주노동자와 유학생들이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두려움을 넘어섭니다.

언제든 잡힐 수 있다는 불안

자신의 미래가 한 번의 단속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

“나는 이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절망감

이러한 구조가 계속된다면, 뚜안의 비극적인 죽음은 안타깝게도 “첫 사례”로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4. 이제 필요한 것은 ‘강한 단속’이 아니라 ‘현실적인 제도’다

한국 사회가 진정으로 준비해야 할 것은 단속 강화가 아니라 제도 개선입니다.

1) 유학생·외국인 졸업생에 대한 현실적인 비자 정책

한국에서 대학·대학원을 졸업한 외국인이 전공과 맞는 일을 한국에서 계속 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취업 비자 전환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단순히 “D-10 비자 상태에서는 여기서 일하면 안 된다”는 규제만 있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합법적으로 일자리를 찾고, 일정 기간 경험을 쌓을 수 있는지 명확한 경로를 제시해야 합니다.

2) 근로허가제도의 현실화

제조업·서비스업 등 외국인 인력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현장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는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합법적으로 일하고 세금을 내고,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현실적인 근로허가제가 필요합니다.

3) 인권 중심의 단속 원칙

단속 방식은 최소한 다음을 보장해야 합니다.

생명과 안전 최우선

공포와 과도한 압박을 유발하지 않는 방식

무리한 추격·도피를 유도하지 않는 절차

특히, 단속 과정에서 비자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위반 수준이 다른 사람들을 일괄적으로 위협하는 방식은 반드시 재검토해야 합니다.

5. 외국인 인권은 ‘선택적 배려’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한국은 이미 K-컬처, K-콘텐츠, K-뷰티, K-푸드 등으로세계에서 큰 영향력을 갖게 된 나라입니다. 이제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은 단지 “일손”이 아니라,함께 일하고 함께 배우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자 한국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로 기억되어야 할까요?

꿈을 꾸고 노력한 만큼 기회를 주는 나라

실수나 작은 위반이 있더라도 대화와 절차로 해결할 수 있는 나라

단속보다 ‘제도 개선’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나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 사건을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일 것입니다.

6. 이제 묻고 싶은 질문

“절차는 적법했다”라는 말만으로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끝날 수 있을까요? “실적 중심 단속”이 계속되는 한, 뚜안과 같은 청년이 다시는 나오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한국 사회가 지금부터 고민해야 할 질문은 “어떻게 더 세게 단속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외국인이 법을 지키며,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제도를 만들 것인가” 

“어떻게 하면 청년 유학생과 이주노동자가 사람답게 일하고, 정당한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할 것인가”라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마무리하며

이 글이 특정 기관을 단순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비자 정책, 근로허가, 단속 방식 전반을 재설계해야 할 시점이라는 문제의식을 전하기를 바랍니다. 외국인 인권은 “우리와 상관없는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숙했는지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더 이상 “실적 채우기 단속”의 그늘에서 젊은 청년의 꿈과 생명이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한국이 진정으로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