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글이며, 일반화할 수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국세청 공무원의 단점, 첫번째 이야기 는 링크를 참조하세요.
국세청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느꼈던 가장 힘든 점 중 하나는 바로 민원 대응이었습니다. 물론 어느 행정기관이나 민원업무는 존재하지만, 국세청은 그 성격상 유독 강도가 높고 빈도도 많은 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국세청은 너무나도 ‘말을 잘 듣는 조직’이어서, 정치적 상황에 휘둘릴 때 직원들이 받는 고통이 적지 않습니다. 오늘은 이 두 가지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1. 악성 민원의 강도와 빈도
세금이라는 이슈 자체가 그렇듯, 기분 좋게 국세청을 찾는 민원인은 드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국민들 머릿속에 국세청 공무원 = 부정부패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돼 있다는 점입니다. 뉴스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국세공무원 캐릭터들이 종종 비리의 상징처럼 묘사되는 영향도 있을 겁니다. 그런 인식이 뿌리 깊다 보니, 민원인들이 공무원에게 처음부터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신고서 작성을 안내하려 하면 "난 아무 것도 할 줄 모른다"는 식의 민원은 양반입니다. 어떤 분은 "내가 돈만 내면 되지, 세금계산은 니들이 알아서 해야지. 내가 왜 알아야 돼?"라며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조금이라도 복잡한 사안에 대해 세무사나 전문가와의 상담을 권하면, 인내심을 잃은 민원인들이 "내가 세무사랑 짜고 돈 먹는 거 아니냐"며 인격을 짓밟는 말을 서슴없이 던지기도 합니다. 더 심한 경우엔, 사업자등록이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발길질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민원실이 아닌 세원과(부가, 소득, 법인, 체납 등) 실무부서에서도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직원들의 사기가 소진되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장기간 근무하면 당연히 정신적으로 타격이 있습니다.
물론 몇차례 세무서에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한 이후 민원 대응 프로세스가 개선되고 있고, 폭언·폭행 민원에 대한 내부보고 체계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정작 실효성 있는 보호조치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신고를 하더라도 실제 징계나 제한 조치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고, 결국 담당 공무원은 감정을 삭이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2. 말 잘 듣는 조직의 그림자
국세청은 전통적으로 ‘말 잘 듣는 조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시가 내려오면 가장 빠르게 실행하고(어떤 때에는 알아서 잘) 정책 기조에 저항하거나 이견을 보이는 일도 드뭅니다. 이것이 ‘행정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일선 직원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신규였던 시절, 어느 날 갑자기 유가환급금 업무가 떨어졌습니다. MB정부 초기였는데, 원래 하던 업무에 더해 갑자기 전 직원이 현장으로 동원돼야 했습니다. 박연차 게이트 역시 정부의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를 막론하고 국세청이 정권의 입맛에 맞추어 일을 했으며, 팬데믹 시기에는 마스크 공급가격을 급격히 올린 업체를 조사대상으로 급조해 인력을 일방적으로 조사에 투입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는 조직축소의 선봉에 섰던 곳이 국세청이었습니다. 그 결과, 본청과 지방청 모두 만성적 인력부족에 시달렸고, 필연적으로 매일같은 야근과 주말근무, 과로사 수준의 피로 누적이 이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세청은 다른 여느 조직보다도 빠르게 본지방청 인력감축을 단행했습니다. 이렇듯 정치적 흐름에 맞춰 민첩하게 움직이는 조직이라는 평가는, 내부에선 직원들을 희생과 소진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국세청은 업무량이 많은 기관입니다. 한정된 인력으로 조세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위치에서 이해받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이 정도쯤은 견뎌야 한다’는 체념도 자연스럽게 조직문화로 굳어졌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명감이 있어도, 지속적인 외부 압력과 내부 피로 누적이 개선되지 않으면 좋은 인재가 머물기 어렵습니다.
국세청 공무원의 단점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모든 게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공직이라는 직업에서 느낄 수 있는 보람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다만, 보람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존재하고, 이 문제들이 개선되지 않는 한, 조직은 점점 더 지치고 무너져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직에 있는 분들, 그리고 앞으로 이 길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 글에서는 국세청의 조직문화와 내부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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