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공직사회 활력 제고 5대 과제’를 발표하고, 공무원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겠다며 공직사회 활력 특별팀을 출범시켰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의 방향성 자체는 진심으로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그동안 소극행정, 무사안일의 관행이 비판받아온 만큼, 적극행정과 책임행정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은 분명히 맞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내용에는 핵심이 빠져 있다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습니다. 공무원들이 실질적으로 활력을 잃고 사기가 저하되는 근본 원인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1. 악성 민원인으로부터의 보호, 반드시 필요합니다
현장 공무원들이 겪는 스트레스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악성 민원입니다. 말로만 하는 민원은 그나마 낫습니다. 욕설, 폭언은 물론, 신체적 위협까지 감내해야 하는 일선 공무원들의 고통은 통계로도, 언론으로도 반복적으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국세청 공무원이 악성민원인을 응대하다가 순직한 사건 이후에도 유의미한 직원 보호 조치는 없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도 고치지 않는 현실이 야속합니다.
적극행정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방향이지만, 공무원이 잘못해서 욕을 먹는 경우보다 ‘원칙대로 처리했기 때문에 민원을 당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이번 계획에는 공무원을 보호하는 제도 개선, 예컨대 악성 민원인에 대한 접근 제한, 법적 대응 지원, 상담 시스템 강화 등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은 열심히 해라, 다만 보호는 없다’는 식의 접근은 오히려 소극행정을 더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2. 공무원 복지, 현실은 많이 열악합니다
많은 분들이 ‘공무원은 철밥통’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계시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복지 수준이 사기업에 비해 턱없이 낮습니다.
제가 공직에 있을 때 가장 당혹스러웠던 일 중 하나는 회식 자리에서조차 자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민간기업에서는 기본적인 팀 회식이나 티타임 예산이 지원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행정기관의 경우, 부서 운영비로는 인스턴트 커피 몇 통, 비닐장갑, 복사용지 사고 나면 예산이 남지 않습니다.
또한, 업무 중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조차 개인 지출로 충당해야 하며, 연말 성과급이나 복지포인트 역시 민간보다 상대적으로 매우 열악한 수준입니다.
이는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나를 배려해주고 있는가에 대한 체감의 문제입니다. ‘열심히 해도 보상이 없다’는 인식은 쉽게 사기를 깎아버립니다.
3. 인재가 몰리지도, 떠나지도 않게 하려면
최근 20여년간 우수한 인력이 점차 공무원 시험으로 눈을 돌리는 추세였습니다. 부모 세대의 불안정한 고용을 목격한 청년 세대는, 안정성을 우선시하며 공무원 시험을 택했던 것이죠. 요즘은 오히려 젊은 인재들이 공직을 그만두는 반대의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국가 전체로 보면, 인재가 한쪽에 과도하게 몰리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적정한 보상’과 ‘합리적인 보호’입니다. 민간은 더 유연하게, 공공은 더 따뜻하게 변화해야 인재가 균형 있게 분산될 수 있습니다.
4. 변화의 핵심은 '사람'입니다
제도 개편, AI 교육, 포상 확대, 당직제도 정비 모두 중요합니다. 하지만 공무원들이 현장에서 가장 먼저 원하는 것은 복잡한 제도보다도 기본적인 존중과 보호, 그리고 공정한 보상입니다.
정부가 정말 공직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제도 이전에 공무원이 사람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구조부터 재설계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아마 수많은 공무원 실무자들의 공통된 생각일 것입니다. 이런 의견들이 빠른 시일 내에 공직사회 활력 특별팀에 전달되어 진정으로 공직자의 삶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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