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서열에 집착하는 나라다. 아니, 거의 병적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등학교 반장 뽑기에서부터 시작해, 중고등학교 내신 서열, 대학 서열, 직장 서열, 심지어 퇴근 순서까지도 서열로 나뉜다. 그리고 그 위에 덧씌워진 '문과 8대 전문직', 'SKY-서성한-중경외시', '평균연봉', '공무원 vs 대기업' 같은 1차원적인 비교는 우리 사회를 실체 없는 위계적 계급사회로 고착시키고 있다.
대학 서열은 실체가 아니다
SKY, 서성한, 중경외시…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단어가 되었다. 나도 위 대학 가운데 하나를 다녔지만 헛웃음만 나오게 하고, 이걸 진리인 양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의 인식들이 얼마나 단세포적인지를 대변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회에서 대학 이름이 갖는 상징성과 통계적 경향성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영광이고, 학업성취도와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가 있는 건 맞지만, 이것이 마치 '인간의 가치'나 '인생의 성공 가능성'을 확정하는 낙인처럼 사용되는 건 심각한 문제다.
학벌이라는 건 배경과 학업성적으로 얻어낸 결과일 뿐, 한 인간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능력의 지표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집안 형편 때문에 입시를 포기했고, 어떤 이들은 지방대에서도 비범한 실력을 쌓아 세계무대를 누비고 있다. 현실은 복합적이다. 단지 입시 결과 하나로 인간의 등급을 나누는 행위는 무지하고 게으른 사고의 산물이다.
‘문과 8대 전문직’? 그 우스운 계급놀음
최근 몇 년간 커뮤니티에서는 이른바 '문과 8대 전문직'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노무사, 감평사 등 직업들이 꼭대기라는 듯이 회자되지만, 정작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이 자격증을 따고도 일거리가 없어 생계를 걱정하고, 반대로 자격이 없어도 사업이나 실력으로 엄청난 성과를 내는 사람도 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말은 하면서, 왜 특정 자격증이 인생을 보장하는 ‘프리패스’인 것처럼 착각하는가? 자격증은 하나의 ‘자원’일 뿐이지, '인생의 등급표'가 아니다.
'평균'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저열한 통계 착시
"평균 연봉 9천!"이라는 말은 한순간에 그 직업에 로망을 입힌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평균은 허상일 뿐이라는 것을. 상위 10%가 평균을 끌어올리고, 하위 90%는 그 그림자에 가려진다. 평균으로 사람을 설득하고, 타인을 평가하는 사회는 결국 현실을 왜곡한 채 ‘헛된 허영’만 키우는 구조다.
깊이를 잃은 사회, 복잡성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
이 모든 서열화의 문제는 대한민국이 복잡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라는 데 있다. 사람은 다 다르다. 성장 배경도, 가치관도, 지향점도, 인생의 타이밍도 제각각이다. 그런데 이런 복잡한 삶을 단 한 줄의 학벌로, 한 개의 자격증으로, 한 장의 연봉표로 ‘줄 세우기’ 하려 한다. 그 사람이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가족을 포함한 대인관계는 어떤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따윈 안중에도 없다. 정성적인 지표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 사회, 그것이 대한민국의 한심한 현실이다.
이것은 게으른 생각의 구조화, 즉 ‘즉각적인 판단’을 위한 포장일 뿐이다. 그 결과, 우리는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가능성을 무시하고, 다양성을 말살한다.
서열지상주의, 이제는 끝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질문해야 한다.
왜 여전히 사람을 출신 학교, 연봉으로 평가하는가?
왜 누군가는 자격증을 따고도 인정받지 못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격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우대받는가?
왜 우리는 누군가를 ‘평균치’라는 허상으로 추앙하거나 배척하는가?
이제는 끝내야 한다.
누구도 누군가의 '등급표'가 되어선 안 된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의미에서 공정과 다양성, 실력을 추구하는 사회로 나아가려면 서열을 만들고, 줄을 세우고, 낙인을 찍는 문화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당신의 삶은 한 줄의 타이틀로 정의되지 않는다.
지금의 위치보다 더 중요한 건, 당신의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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