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는 D 드라이브에 있습니다.”p
많은 공직자 여러분께서 이 짧은 문장 속에서 익숙함과 동시에 안타까움을 느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수개월, 때로는 수년에 걸쳐 축적된 정책 자료와 회의 기록이 한 사람의 퇴직이나 자리를 비운 순간, 함께 사라지는 일이 아직도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공공조직은 수차례 같은 일을 반복하고, 행정의 연속성과 전문성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께서는 최근 기고문을 통해 이러한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주셨습니다. 인공지능(AI)은 ‘잠재된 패턴’을 학습하는 존재이며, 그 기반은 충분하고도 구조화된 데이터, 특히 ‘문맥이 살아 있는 데이터’입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 공직사회는 지나치게 파편화된 문장, 개조식 보고서, 폐쇄적인 파일 보관 문화에 머물러 있어 AI 도입의 실효성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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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인계의 부실, 문서관리의 한계… AI가 답을 줄 수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나 정부부처를 막론하고 ‘인수인계의 부재’는 공직사회 내 만연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새로 부임한 담당자가 이전 업무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자원이 낭비되며, 어떤 경우에는 동일한 정책을 처음부터 다시 기획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이러한 비효율은 단순히 인사이동 때문만은 아닙니다. 기록이 남지 않고, 맥락이 공유되지 않으며, 시스템상 접근도 어려운 구조가 더 큰 원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유능한 공무원이라도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이제 우리는 AI 기술과 디지털 협업 시스템을 활용하여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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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핵심은 ‘서술형 기록’과 ‘클라우드 기반 협업’입니다
공공 부문에서 인공지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도입을 넘어 기록과 협업의 방식 자체를 혁신해야 합니다. 다음과 같은 개선 방향을 제안드립니다.
1. 클라우드 기반의 위키 시스템 도입
부서별 정책 추진 과정, 회의록, 참고자료 등을 하나의 플랫폼에 구조화하여 기록합니다.
모든 문서는 서술형으로 정리하여 향후 인공지능 학습 및 인수인계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관리자는 특정 문서를 쉽게 찾을 수 있으며, 필요시 담당자 변경 시에도 업무 연속성이 확보됩니다.
2. AI 기반 문맥 요약 및 검색 기능 도입
기존 문서에서 맥락을 자동 추출하고, 필요한 내용을 요약해주는 AI 기능을 활용합니다.
신규 담당자는 방대한 문서 속에서도 핵심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3. ‘개조식 보고’에서 ‘서술형 보고’로 전환
보고서는 단순 정보 전달을 넘어서, 사고의 흐름과 논리를 담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술형 문서 작성은 인공지능 학습에도 훨씬 유리하며, 오류와 왜곡도 줄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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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물론, 공공기관에서는 보안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은 보안 또한 함께 강화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계층별 접근 권한을 통해 보안을 유지하면서도 협업은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 기반 접근 기록을 도입하여 투명성과 보안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습니다.
자동 백업 및 분산 저장 시스템으로 특정 컴퓨터의 포맷이나 고장으로 인한 자료 유실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보안은 ‘닫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입니다. 기록과 공유를 포기하지 않고도, 보안을 확보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 이것이 미래지향적 행정혁신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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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더 나은 공공행정을 위한 선택
AI는 공무원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공무원이 더 잘 일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이며, 오히려 유능한 공무원의 능력을 더 크게 확장시켜 주는 조력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조력자의 도움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지금의 보고 문화, 문서 저장 방식, 협업 방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공무원 사회의 진짜 혁신은 ‘문맥을 공유하는 문화’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AI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D 드라이브’에 의존한 문서관리 관행을 바꾸지 않는다면, 미래 행정의 경쟁력은 요원할 것입니다. 이제는 AI가 좋아할 만한 공직사회의 문화를 만들어갈 때입니다. 그 출발점은, 기록을 남기고, 맥락을 공유하며, 협업을 열어두는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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