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인구감소 지역 관광을 살리기 위해 ‘디지털 관광주민증’이라는 제도를 확대하고 있다. 이제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앱뿐 아니라 티맵(Tmap), 심지어 은행 앱에서도 이 관광주민증을 발급받을 수 있게 되었단다. 사용자는 해당 지역을 방문하면 식음료, 숙박, 관람 등에서 다양한 할인을 받을 수 있고, 이는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제도의 취지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소멸 위기에 놓인 지방도시를 살리고, 국민이 여행을 통해 힐링하며 소비하는 것은 긍정적인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국내여행을 망설인다. 아니, 솔직히 말해 가기 싫다.
왜일까? 겉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우리나라의 관광 시스템이 실제로는 매우 피로감 높은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몇 가지 짚어보려 한다.
1. 고질적인 교통체증, 힐링은커녕 스트레스만
휴가철만 되면 고속도로는 주차장이 된다. 웬만큼 어둑한 새벽에 출발하지 않으면 서울에서 강릉, 부산, 전주 어디든지 고통스러운 체증을 피하기 어렵다. 문제는 도로만 막히는 게 아니라, 그 와중에 얌체 운전, 끼어들기, 갓길 주행 등 수준낮은 교통문화를 몸소 체험하게 되면 여행의 설렘은 증발하고 불쾌감만 가득 남는다. 마음 편히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엔 한숨과 짜증만 가득하다면...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들겠는가?
2. 지나치게 북적이는 여행지, 조용한 힐링은 사치
나처럼 한적하고 조용한 여행지를 선호하는 사람에게 국내여행은 단순히 돈 쓰기 놀이다. 웬만한 관광지라면 인파에 휩쓸리고, 진입부터 주차까지 인내심 테스트다.
게다가 그 인파 속에 질서를 지키지 않는 일부 방문객들을 마주치게 되면 ‘굳이 여기까지 와서 이런 꼴을 봐야 하나’라는 회의감이 밀려온다. 힐링은커녕 스트레스를 더 얻는 구조다.
3. 여전한 바가지 문화, 불신의 벽을 넘지 못한다
“시골 인심은 따뜻하다”는 말은, 이제 믿기 어렵다.
강릉의 작은 가게에서 컵라면 하나 샀더니 상한 김치를 슬쩍 껴서 2천 원을 요구하던 경험이 있다. 당시 제육덮밥이 3천 원 하던 시절이다.
휴가철만 되면 아무 서비스 개선도 없이 숙박비가 두 배 세 배 뛴다. 지역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한철 장사'일 수 있겠지만, 기억에 남는 여행이 아니라 기분 나쁜 소비로 끝나버린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국내여행을 꺼리게 된다.
4. 개성이 부족한 도시들, ‘어디서 본 듯한’ 장소의 연속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다. 그만큼 도시들의 개성 차별화도 쉽지 않다. 지방자치단체마다 나름대로 관광브랜드를 내세우지만, 실제로 방문해 보면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반복된다.
정작 제대로 된 바다와 경관은 적고, 그나마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양양조차 외국의 리조트 해변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지방정부의 관광 전략이 아직도 표준화, 전시행정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정책보다 먼저 필요한 건 ‘여행 품질’의 개선
물론 정부는 이런 문제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디지털 관광주민증 같은 제도를 통해 접근성과 혜택을 늘리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제도는 하나의 ‘틀’일 뿐, 그 틀 안에 담기는 ‘경험’이 바뀌지 않으면 소비자는 반응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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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인프라의 재정비와 얌체 운전 단속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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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관광 수용 인원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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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바가지 근절 캠페인 및 신고 시스템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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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고유의 콘텐츠 발굴과 문화 정체성 강화
이런 것들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국민들이 ‘다시 가고 싶은 국내여행’을 꿈꿀 수 있다.
이제 국내여행은 선택이 아니라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필수 전략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 전략이 실질적인 품질 향상을 통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나처럼 국내여행을 꺼리는 사람들이 다시 가방을 들 수 있도록 말이다. 국산품 애용 같은 구시대적인 구호로 자국민들 잡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실질적인 대책으로 마음을 끌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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